2005년 영국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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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5년 영국 총선은 2005년 5월 5일에 치러졌으며, 영국 하원 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선거는 소선거구제를 기반으로 진행되었으며, 18세 이상의 영국 국적자, 영연방 시민, 아일랜드 공화국 시민에게 선거권이 주어졌다. 주요 정당으로는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 마이클 하워드가 이끄는 보수당, 찰스 케네디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이 참여했다. 선거 결과, 노동당은 과반수를 확보하며 승리했지만, 의석 수는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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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영국 총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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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개요 | |
선거 이름 | 2005년 영국 총선 |
국가 | 영국 |
선거 유형 | 의회 |
진행 여부 | 아니오 |
이전 선거 | 2001년 영국 총선 |
이전 선거 연도 | 2001년 |
다음 선거 | 2010년 영국 총선 |
다음 선거 연도 | 2010년 |
선출 의석 수 | 하원 전체 646석 |
과반 의석 수 | 324석 |
선거일 | 2005년 5월 5일 |
등록 유권자 수 | 44,245,939명 |
투표율 | 27,148,510명 (61.4%, 2.0%p) |
여론 조사 | 2005년 영국 총선 여론 조사 |
해산일 | 2005년 4월 11일 |
공시일 | 2005년 4월 11일 |
선거 제도 | 단순 소선거구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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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당 및 지도자 | |
제1당 | 노동당 |
노동당 지도자 | 토니 블레어 |
노동당 지도자 취임일 | 1994년 7월 21일 |
노동당 지도자 지역구 | 세지필드 |
노동당 이전 선거 의석수 | 413석 |
노동당 당선 의석수 | 356석 |
노동당 선거 전 의석수 | 403석 |
노동당 의석 변화 | 47석 |
노동당 득표수 | 9,552,436표 |
노동당 득표율 | 35.2% |
노동당 득표율 변화 | 5.5% |
제2당 | 보수당 |
보수당 지도자 | 마이클 하워드 |
보수당 지도자 취임일 | 2003년 11월 6일 |
보수당 지도자 지역구 | 포크스턴・하이스 |
보수당 이전 선거 의석수 | 166석 |
보수당 당선 의석수 | 198석 |
보수당 선거 전 의석수 | 165석 |
보수당 의석 변화 | 33석 |
보수당 득표수 | 8,784,915표 |
보수당 득표율 | 32.4% |
보수당 득표율 변화 | 5.5% |
제3당 | 자유민주당 |
자유민주당 지도자 | 찰스 케네디 |
자유민주당 지도자 취임일 | 1999년 8월 9일 |
자유민주당 지도자 지역구 | 로스・스카이・인버네스웨스트 |
자유민주당 이전 선거 의석수 | 52석 |
자유민주당 당선 의석수 | 62석 |
자유민주당 선거 전 의석수 | 51석 |
자유민주당 의석 변화 | 11석 |
자유민주당 득표수 | 5,985,454표 |
자유민주당 득표율 | 22.0% |
자유민주당 득표율 변화 | 3.7% |
총리 정보 | |
직책 | 총리 |
선거 전 총리 | 토니 블레어 |
선거 전 총리 소속 정당 | 노동당 |
선거 후 총리 | 토니 블레어 |
선거 후 총리 소속 정당 | 노동당 |
2. 역사적 배경
2001년 영국 총선 이후 4년 만에 치러진 2005년 영국 총선은 낮은 실업률과 견조한 개인 소비로 호황을 누리는 영국 경제 속에서 진행되었다.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5년 임기의 하원 의원 임기를 1년 앞당겨 하원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였다. 2003년에 발발한 이라크 전쟁 참전 여부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2. 1. 선거 이전 상황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집권 노동당은 세 번째 임기를 확보하고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려 했다. 보수당은 1992년 총선 이후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에 잃었던 의석을 되찾고, 공식 야당에서 정부로 진입하려 했다. 자유민주당은 양대 정당 모두에게서 의석을 얻고자 했지만, 특히 그림자 내각의 의원들을 겨냥한 "참수" 전략을 통해 보수당으로부터 더 많은 의석을 얻고자 했다. 자유민주당은 또한 집권당이 되거나, 충분한 의석을 확보하여 공식 야당이 되기를 희망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소수 노동당 또는 보수당 정부가 이끄는 의회에서 주요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북아일랜드에서는 민주연합당이 얼스터 연합당으로부터 연합주의 정치에서 더 많은 의석을 얻으려 했고, 신 페인은 사회 민주노동당을 제치고 민족주의 정치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다. (신 페인 의원들은 하원에서 의석을 차지하지 않으며, 불참주의 정책을 따른다.) 친독립 스코틀랜드 국민당과 플라이드 컴리 (웨일스당)는 각각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출마시켰다.
하원에 현직 의원이 없는 정당을 포함하여 많은 정당들이 경쟁했다. 분권 의회 및/또는 유럽 의회에 의석을 가지고 있지만 웨스트민스터에는 대표가 없는 정당으로는 북아일랜드 연합당, 영국 독립당, 잉글랜드 웨일스 녹색당, 스코틀랜드 녹색당, 스코틀랜드 사회당이 있었다. 건강 우려 정당도 다시 출마했다. 출마 의사를 밝힌 정당의 전체 목록은 2005년 총선 출마 정당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정당은 당 선거 공약, 정당 정치 방송 및 일반적으로 유세 버스라고 불리는 전국 순회를 포함한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여 선거 운동을 벌였다.
잉글랜드 일부 지역과 북아일랜드에서는 지방 선거가 같은 날 실시되었다. 투표는 BST (UTC+1) 기준으로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5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이번 선거는 토니 블레어 총리의 요청에 따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4월 11일에 의회 해산한 지 3주가 조금 넘은 시점에 치러졌다.
2001년 7월 총선 이후 4년 만에 치러진 선거로, 낮은 실업률과 견조한 개인 소비로 호황을 누리는 영국 경제 속에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5년 임기의 하원 의원 임기를 1년 앞당겨 하원을 해산하고 치러졌다. 2003년에 발발한 이라크 전쟁 참전 여부 등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선거 결과 노동당은 창당 이래 처음으로 3선 연임에 성공했지만, 지난 선거보다 40석 이상 의석을 잃는 결과를 낳았다.
3. 선거 제도
- '''의회 구성''': 상원(귀족원)과 하원(서민원) 두 개로 구성되지만, 귀족원 의원은 세습 귀족이나 일대 귀족 등에서 선출되며 선거로 선출되지 않으므로 하원 의원만 총선거로 선출된다.
- '''선거권을 가진 사람''': 18세 이상의 영국 국적자 및 영연방 시민, 아일랜드 공화국 시민으로, 교도소 복역 등 일정한 결격 요건에 해당하지 않고 거주하는 자치단체에 선거인 등록을 한 자.
- '''피선거권을 가진 사람''': 21세 이상의 영국 국적자 및 영연방 시민, 아일랜드 공화국 시민으로, 귀족원 의원 등 일정한 결격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자.
- '''하원 의원 임기''': 의원 임기는 5년이지만, 임기 만료 전에 총선거가 치러지는 경우가 많다(전회는 2001년).
- '''정수''': 646석 (스코틀랜드 지역 의회에 권한이 이양됨에 따라 스코틀랜드 지역 의석 수가 삭감되었기 때문에 전회보다 13석 감소).
- '''선거 제도''': 각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를 얻은 후보자 1명만 당선되는 완전 소선거구제.
4. 선거 일정
5. 주요 정당 및 정책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은 세 번째 임기를 확보하고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려 했다. 보수당은 1992년 총선 이후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에 잃었던 의석을 되찾고, 공식 야당에서 정부로 진입하려 했다. 자유민주당은 양대 정당 모두에게서 의석을 얻고자 했지만, 특히 그림자 내각의 의원들을 겨냥한 "참수" 전략을 통해 보수당으로부터 더 많은 의석을 얻고자 했다. 자유민주당은 또한 집권당이 되거나, 충분한 의석을 확보하여 공식 야당이 되기를 희망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소수 노동당 또는 보수당 정부가 이끄는 의회에서 주요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
북아일랜드에서는 민주연합당이 얼스터 연합당으로부터 연합주의 정치에서 더 많은 의석을 얻으려 했고, 신 페인은 사회 민주노동당을 제치고 민족주의 정치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다. (신 페인 의원들은 하원에서 의석을 차지하지 않으며, 불참주의 정책을 따른다.) 친독립 스코틀랜드 국민당과 플라이드 컴리 (웨일스당)는 각각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출마시켰다.
하원에 현직 의원이 없는 정당을 포함하여 많은 정당들이 경쟁했다. 분권 의회 및/또는 유럽 의회에 의석을 가지고 있지만 웨스트민스터에는 대표가 없는 정당으로는 북아일랜드 연합당, 영국 독립당, 잉글랜드 웨일스 녹색당, 스코틀랜드 녹색당, 스코틀랜드 사회당이 있었다. 건강 우려 정당도 다시 출마했다. 출마 의사를 밝힌 정당의 전체 목록은 2005년 총선 출마 정당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정당은 당 선거 공약, 정당 정치 방송 및 일반적으로 유세 버스라고 불리는 전국 순회를 포함한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여 선거 운동을 벌였다.
6. 선거 운동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은 3선 연임과 다수당 유지를 목표로 했다. 보수당은 1992년 총선 이후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에 잃었던 의석을 되찾고, 공식 야당에서 벗어나 집권 여당이 되고자 했다. 자유민주당은 양대 정당 모두에게서 의석을 얻고자 했지만, 특히 그림자 내각 의원들을 겨냥한 "참수" 전략을 통해 보수당으로부터 더 많은 의석을 얻고자 했다. 자유민주당은 또한 집권당이 되거나, 충분한 의석을 확보하여 공식 야당이 되기를 희망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소수 노동당 또는 보수당 정부가 이끄는 의회에서 주요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6]
북아일랜드에서는 민주연합당이 얼스터 연합당으로부터 연합주의 정치에서 더 많은 의석을 얻으려 했고, 신 페인은 사회 민주노동당을 제치고 민족주의 정치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다. (신 페인 의원들은 하원에서 의석을 차지하지 않으며, 불참주의 정책을 따른다.) 친독립 스코틀랜드 국민당과 플라이드 컴리 (웨일스당)는 각각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출마시켰다.
잉글랜드 일부 지역과 북아일랜드에서는 지방 선거가 같은 날 실시되었다. 투표는 BST (UTC+1) 기준으로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5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이번 선거는 토니 블레어 총리의 요청에 따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4월 11일에 의회 해산한 지 3주가 조금 넘은 시점에 치러졌다.
8년간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힘입어 노동당은 교육 및 보건과 같은 공공 서비스에 대한 더 많은 투자를 통해 강력한 경제를 이룩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당시 광범위한 대중의 비판을 받았고 선거 운동 기간 내내 블레어를 괴롭힐 2003년 이라크 침공이라는 논란의 문제로 인해 빛이 바랬다.[7] 재무장관인 고든 브라운은 선거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블레어와 자주 함께 등장하여 경제가 노동당 메시지의 중심 초점으로 유지되도록 했다.
새롭게 선출된 보수당 대표인 마이클 하워드는 18개월 전에 전 대표인 이안 던컨 스미스를 축출한 정당에 상당한 수준의 경험과 안정을 가져왔다.[8] 보수당 선거 운동은 호주 전략가인 린턴 크로스비가 관리했다.[9] 선거 운동은 "이민 제한을 두는 것은 인종 차별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일부 논란을 일으킨 이민 문제와 같은 보다 전통적인 보수주의 문제에 집중했다.[10] 또한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까?"라는 슬로건 아래 노동당의 "더러운" 병원과 높은 범죄율을 비판했다.[11]
그러나 노동당은 하워드가 인기가 없었던 1992-1997년 메이저 정부에서 했던 역할을 강조하고, 하워드를 공격하는 정당 선거 방송을 방영하며 반격했다. 여기에는 하워드가 내무 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의 교도소 폭동과 주택 압류 장면을 담은 몽타주가 포함되었다. 또한 하워드와 보수당의 이전 지도자 4명 (이안 던컨 스미스, 윌리엄 헤이그, 존 메이저, 마거릿 대처)을 보여주는 옥외 광고 캠페인을 시작하여 "영국은 일하고 있습니다. 보수당이 다시 망치게 두지 마십시오."라는 문구를 넣었다.
자유민주당에게는 이것이 이라크 전쟁에 강력히 반대하고 유권자들에게 보다 현실적인 접근 방식을 개인적으로 제공하여 인기를 얻은 대표 찰스 케네디가 치른 두 번째이자 마지막 선거 운동이었다. 그러나 자유민주당의 정책 발표회에서 그는 지역 소득세에 대한 질문을 받고 수치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등 케네디의 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12] 자유민주당과 보수당 모두 노동당의 학비 도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고 했으며, 두 야당은 이에 반대하여 폐지를 약속했다.[13]
영국 경제가 호조를 보이는 가운데, 노동당 사상 첫 3선 연임에 도전하는 토니 블레어 총리에 대해, 2003년에 발발한 이라크 전쟁에 영국이 참전하기 위해 정부가 했다고 여겨지는 정보 조작 의혹이나 참전 여부에 대한 일련의 비판을 국민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또한 1997년과 2001년 총선에서 대패한 보수당이 반전을 이룰 수 있을지, 그리고 지난 몇 차례의 총선에서 순조롭게 의석을 늘리고 있는 자유민주당이 이번에 어느 정도까지 의석을 늘릴 수 있을지가 주목되었다.
7. 여론 조사
이전 영국 선거에서 출구 조사에 문제가 발생한 이후, BBC와 ITV는 처음으로 각각의 데이터를 공유하기로 합의했으며, Mori와 NOP의 결과를 사용했다. 전국 120개 투표소에서 2만 명 이상이 여론조사에 참여했다. 예측은 매우 정확했다. 초기 예측은 노동당이 66석(160석에서 감소)의 과반수로 정권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으며,[14] 사우스 스태퍼드셔 (후보의 사망으로 선거가 연기됨)를 포함한 최종 결과는 실제로 노동당이 66석의 과반수를 차지했다.
영국에서 예상되는 득표율은 노동당 35%(2001년 대비 6% 감소), 보수당 33%(1% 증가), 자유민주당 22%(4% 증가), 기타 정당 8%(1% 증가)였다.[14] 보수당은 가장 큰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출구 조사에 따르면 44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었고, 자유민주당은 2석 정도를 얻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출구 조사에서 예측한 자유민주당의 득표율은 정확했지만(실제 22.0%에 비해 22.6%), 전국 득표율을 기준으로 예측한 것보다 일부 자유민주당-노동당 경합 지역에서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11석의 순증가를 기록했다.
8. 선거 결과






